최종편집 2019.12.6 20:47
전체 | 여성정책 | 정치 | 경제/IT | 사회 | 교육n문화 | 생활n정보 | 종합 | 오피니언 | 시론 | 여성신문e-행사 | 613 지방선거 |
오피니언
 전체
 발행인칼럼
 남강칼럼
 세상을열며
 칼럼
  가장많이본뉴스
트럼프를 불에
문재인 대통령을
박 대통령에 직
돌아온 캠핑의
이정현, 당신은
김성일 창원시의
경남여성신문창간
“이런 교복 처
늙음이 단풍처럼
붉은 함양에 다
마당극 ‘효자전
김재하 경상남도
경남여성 신년회
식약청,유기농
박근혜 생매장과
박근혜 대통령님
“표창원의원 부
트럼프 대통령
[뉴스&이슈]
제5회 지방선거
 
뉴스홈 >기사보기
광주사태의 성격과 이념

[2019-02-25 오후 7:51:28]
 
 
 

 이용식/건국대학교의학전문대학원교수

광주사태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광주사태를 일으킨 세력은 정치적 야망을 가진 김대중 세력과, 북한 공산주의이념에 사로잡히고 세뇌된 공산화운동권과 적화통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북한이었다 

물론 이들 세력은 서로 연관이 되어있어 피자를 자르듯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김대중은 운동권을 조종하고 있었고, 운동권은 북한의 간첩들과 공모하여 반박정희 연대를 결성하고 있었으나 각각의 세력은 나름대로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김대중은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권력의 공백기에 어차피 헌법 절차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선동을 통한 폭동으로 허약한 최규하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임시 내각을 동원하여 정권을 찬탈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를 위해 공산주의 이념서적으로 세뇌되고 박정희 정권하에서 투옥과 석방을 통해 단련되어 투사와 전사로 키워진 운동권 청년들을 자기 밑으로 흡수하였다. 이들을 이용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학생시절부터 공산주의 이념서적을 탐독하여 공산주의에 세뇌되고 현실에 불만을 가진 운동권은 북한 간첩들에게는 포섭하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이 제공하는 자금이나 권유에 넘어가 반체제 활동을 하였고 강력한 반공정책을 펼치고 있던 박정희 정권에게 이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전염병이었다 

이들의 배후에는 남파된 간첩뿐만이 아니라 해방이후부터 남한에 남아있던 공산주의자들과 4.3 여순 반란 사건 때 지리산 등에서 빨치산 노릇을 하다 풀려난 왕년의 빨치산들도 있었고 북한 간첩들에게 포섭되어 동반월북 후 교육을 받고 내려온 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주동이 되어 1960년부터 1980년 광주사태 직전까지 반체제 공작이 있어왔는데 적발된 것만해도 인민혁명당 사건(1964), 통일혁명당 사건 (1978), 인민혁멱당 재건 위원회 사건과 이들의 공작으로 포섭된 민주청년학생총연합회(민청년) 사건(1974) 그리고 이 사건으로 풀려난 자들로 구성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1979)등이 있었다 

잡초를 제거해도 뿌리가 남아 다시 자라는 것과 같이 한번 이 조직에 가담된 자들이 복역 후 풀려나와 다시 조직을 재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들은 검거되어도 조직의 비밀을 밝히지 않고 거짓 자백을 하는 등 수사관들을 속였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고문과 구타가 필요하였다 

소위 독종일수록 혐의를 부인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더 심한 고문과 구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체포와 석방이 반복될수록 박정희 정권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커져갔다. 실제로 윤한봉 등 민청학련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던 광주 운동권은 박정희 암살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대통령권한 대행을 맡았던 최규하는 이런 운동권들에게 무조건 석방, 복권, 복학이라는 혜택을 베풂으로써 민주화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과시하려 하였으나 이들 운동권세력은 이런 조치를 고마워하기는커녕 그들이 증오하던 박정희 유신정권에 복수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였다. 

한편 1968121일 김신조 등 특수군을 남파하여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1.21사태나, 1976년 문세광의 박정희 저격사건 등 박정희 집권 때부터 호시탐탐 박정희를 제거할 기회를 엿보던 김일성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살해를 적화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였다 

이들은 신속히 움직여 김대중 세력과 연락을 취하는 한 편, 남한 운동권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남침을 위한 공작을 세밀히 준비해 나갔다. 그들이 세운 작전은 월남전에서처럼 적 후방에서의 은밀한 게릴라 작전으로서 김대중과 남한 운동권이 일으킨 시위에 은밀히 참가하여 폭동기폭조 역할을 하여 시위를 폭동화하고 경찰과 군이 출동하면 학생,시민에게서 사상자가 생기게 한 후, 유언비어를 살포하여 적개심을 유발케하여 시위를 더 확산시키고, 군인과 광주시민으로 위장한 무장침투조가 시민과 군인을 향해 발포하여 군과 시민이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유발시켜 서로 다투게 함으로써 폭동을 무장폭동화 함으로써 전국이 혼란에 빠질 때 남침하여 남한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김대중은 집권이, 운동권은 복수가, 북한은 적화통일이 목표였으므로 세 세력의 최종목표는 서로 달랐지만 박정희 정권 타도라는 목표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박정권 타도를 위한 카르텔 즉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보는 관점은 세 집단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김대중 세력이 발표한 선언문을 살펴보자. 

5.7일 발표한 <민주화촉진 국민선언>에서 이들은 국민들에게 유신잔당을 타도할 투쟁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면서 비상계엄해제, 신현확총리 퇴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 모든 정치범, 양심범(간첩) 즉각 석방 모든 언론인, 교수 등 해직자 전원 복직, 언론의 자유 보장,유정회, 통일주체 국민회의 해산, 정부의 개헌심의위원회 해산, 개헌 공청회 포기 등을 요구하였다 

이들의 요구야 말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혼란에 빠트릴 요구였다. 이들은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리라고 생각하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계획하고 있는 폭동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5.16일에는 2차 국민선언을 통해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5.22일 정오를 기해 전국적인 폭동 시위를 일으키겠노라고 최규하 정부를 협박하였다 

이 선언문 작성자가 왕년의 빨치산 박현채였기 때문에 선언문에 자주 통일 즉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적화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살짝 언급되기도 하였으나 이 선언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최규하 정부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폭동으로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내용으로서 김대중의 목표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다 

최규하 대통령의 선심으로 풀려난 운동권은 모두 김대중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들에게는 헌정질서내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려는 김영삼의 노선보다 현 정권을 폭력으로 타도하자는 김대중의 노선이 더 뜻에 맞았던 것이다. 김대중의 지시하에 서울과 광주 운동권은 5.16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한다는 뜻에서 14일부터 16일까지 대규모 폭동을 계획하였다. 데모 지휘자인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서울역 광장에 모인 10만의 대학생들을 이끌고 화염병과 각목 등으로 무장하여 청와대를 점령할 계획이었다. 시위 둘째날인 5.15, 서울역을 향해 남대문에서 시위대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괴한이 탈취한 버스에 깔려 한명이 죽고 4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날 헬기를 타고 시위현장을 돌아 본 김종환 내무부 장관과 주영복 국방장관은 경찰력으로는 시위를 막을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군을 투입하는데 합의하고 서울시내에 군부대 주둔을 명령하게 되는데 이 소식이 시위대 지휘부에 알려지자 유혈 충돌을 염려한 심재철은 시위대 해산을 명령한다 

이날의 시위는 10만이라는 충분한 시위대가 있었고 간첩으로 보이는 괴한에 의한 차량을 이용한 돌격 등 지원부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투입이라는 결정에 지휘부의 기가 꺽여버린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정상적인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광주운동권들도 58일부터 전남대학교 학원내 시위를 시작하였고 이 시위의 이름이 <민족민주화 성회 民族民主化 聖會>였다. 5.14일부터 16일까지는 가두 시위를 벌였다. 물론 이 시위는 5.19일로 예정된 무장 폭동을 위한 준비운동이며 예행연습 이었다 

이 시위의 목적은 미국을 몰아내고 박정희 유신 잔당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매판기업인들을 앞세워 노동자 농민의 피를 빨아먹는 미국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이런 반민족적 사업의 두목인 유신잔당을 타도하여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이 땅에서 실현하기 위한 모임이었고 결국 광주를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않는 <해방구>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시위 첫날 발표된 성명서 역시 학생들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빨치산 출신 박현채가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통일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의 지론인 민족경제론에 입각하여 노동자 농민 문제를 언급하고 있고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이를 옹호하는 박정희 정부를 반민족세력으로, 현 집권 세력을 반민주 유신잔당으로 매도하고 있다 

민족민주화 성회!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의 척결을 위해 투쟁해온 우리 전남대학인은 참다운 민주와 평등의 꽃이 피어오르는 그날까지 민족민주화 성회를 계속할 것을 선포하며, 이곳이 해방을 맞는 민족의 광장이 되기를 염원한다 

514일날 발표된 대학생,중고생,시민 봉기위원회 명의의 성명서 제목은 <5천만 겨레여>이다. 서러운 민족이여!

민족의 대다수는 해마다 20-30%씩 오르는 물가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저임금하에서 죽지못해 살아가는 실정이다. 유신잔당놈들과 매국노들의 앞잡이인 매판기업가놈들은 민족의 땅을 착취하여 그들의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족은 바보같이 입에 풀칠을 하니까 괜찮다는 식이다.

일어나라 민족이여!

인간은 먹고만 사는 개 돼지가 아니다. 인간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다운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더 이상 독재가, 외국들이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상황이 없도록 다같이 일어나자. 

5.15일 전남대 총학생회와 조선대 민주투쟁위원회 명의의 <2 시국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제국주의 열강의 조국침탈은 민족혼의 말살까지 강요해온 바, 온 산하를 척박한 폐허로 만들어서 민족의 신음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비장한 결단을 내리게 하였다 

이에 우리는 유신잔당의 국민주권 찬탈음모를 분쇄하고자, 우리 대학인의 민주역량을 총집결하여 반민주 반민족 세력과의 성전을 엄숙히 선포한다.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핏빛 진달래로 피어오르길 바란다! 

이 성명서를 요약하면 우리나라는 미국에 의해 식민지 상태에 있으며 이들의 앞잡이인 매판자본,매판 기업가들이 노동자 농민을 착취하고 있으니 이들의 두목인 유신잔당 정부 즉 최규하 정부를 유혈 폭동으로 뒤집어 엎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자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성명서가 발표되고 나서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실제로 광주는 해방구가 되었다. 

이 성명서도 빨치산이었던 박현채가 작성한 것이라 통일 즉 공산통일에 대해 살짝 언급이 되어 있으나 광주 운동권의 투쟁의 목표도 유신잔당 정권인 최규하 정부를 뒤집어 엎는 것이었다. 

북한은 광주사태를 어떻게 보고있는지는 2015518일자 노동신문 논평에 잘 나타나 있다. 2015518일 로동신문 기사 광주의 넋을 이어 결사의 투쟁으로 파쑈독재정치를 끝장내자 남조선에서 영웅적 광주인민봉기가 있은 때로부터 서른다섯해가 되었다 

광주의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은 왜 항쟁의 거리에 떨쳐 나섰던가. 그들이 죽음도 두려움없이 피의 결사전에 나섰던 것은 바로 꿈에도 소원인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외세가 없고 독재가 없는 민주의 세상에서 인간의 참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통일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려는 그들의 념원은 야수적인 총칼 폭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과연 누가 정의에 불타고 애국에 열렬한 광주항쟁용사들을 살륙하였는가. 다름아닌 미국과 괴뢰군부 깡패들이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인민봉기자들의 간결한 투쟁정신은 오늘도 남녘겨레를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투쟁에로 부르고 있다. <본사 기자 김향미>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인민봉기는 미국의 식민지 지배와 전두환, 로태우일당의 포악한 군부파쑈독재정치를 끝장내고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피어린 반미반파쑈애국투쟁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의식이 자라고 반파쑈민주화투쟁에로 발전하는데서 광주인민봉기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보는 견지에서 광주사태는 분명히 통일-즉 남한의 공산화를 위해 자신들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남한의 적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 미군을 몰아내는 것이었기에 그리고 반공정책을 펴는 정부를 타도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자주,민주,통일이 북한이 보는 광주사태의 성격이요 정신이며 광주사태에서 북한이 노린 것이 광주를 시초로 한 전국적인 봉기로 남한 적화를 위한 발판인 광주해방구, 광주민국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김대중과 광주의 성명서도 빨치산 출신 경제학자며 김대중 연설문 대필가인 김일성 숭배자 박현채의 작품이라 이 성명 내용에는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민주,통일 정신이 들어있으나 광주폭동을 기획한 김대중과 광주 운동권이 적화통일에 대해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었는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세 세력이 연합하여 최규하 정부를 폭동으로 타도하려 했던 것이 광주사태이며 북한은 이 폭동을 무장폭동화하여 전국적 혼란을 일으키려 남한을 인민민주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불리 울 수 있을 것이다.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최근기사
사천시 2019년 성폭력·가정폭력 추
창녕문화예술회관에서 따뜻한 연말 보내
창녕군, 2019년 제2회 청소년안전
산청읍주민자치위원회 이웃돕기 성금 기
김해시복지재단 자원봉사자․
수곡면 여성자원봉사대 ‘사랑의 김장나
박셩현교사, 손 편지 감동에 다시 찾
靑 비서실 압수수색 바로 다음날 &#
한일 우호지향 시민단체 “위안부 동상
부북면 새마을부녀회 사랑의 김치, 떡
감동뉴스
진주,‘마을수호신’ 노거수 정비
박은정 규방공예연구회장, 작품‘만남’
늙음이 단풍처럼 물든 나에게 한글이란
깜짝뉴스
돌아온 캠핑의 계절 가을, 경남에 캠
김성일 창원시의원 탈당권유키로
박근혜 대통령님 주구난방 정부 이제야
 
전체 :
어제 :
오늘 :
경남창원시 성산구 용지로 133번길1 한일빌딩4층(중앙동 89-6) | Tel 055-267-1203 | Fax 055-267-4903
Copyright ⓒ 여성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omenis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