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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보고 싶습니다...박영헌 선생의 일대기

보고 싶습니다...박영헌 선생의 일대기

 

선생님은 19192월 남해섬의 작은 어촌마을인 남면 당항에서 어났다. 1922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192637일 우리나라의 부산과 유사한 일본의 항구도시인 오사카시 센이진조 소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도에 졸업하였다. (1919~1999)

이후 오사카 이쿠노 중고등학교를 1937년도에 졸업하고, 그 해 1110일 검도 초단을 취득하였다.

다음 해 420일 하세카와 에이신류 거합도 초단을 취득하였는데 당시 검도와 거합술을 같이 배웠다고 한다.

1943년도 415일 거합도 3단 승단과 동시 오사카 무덕관에서 사범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1111일에는 검도 3단에 올랐는데, 그 당시 3단은 현재의 5단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조선인이 무시당하던 일제 강점기에 선생님의 천재성을 일본에 인식시킨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일본인 자존심의 상징인 검도에서 조선인이 지도자로 활동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대단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일본에서 야구부 특기생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며 가라데 2, 유도 초단 등의 실력을 갖추어 또래 일본학생들 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다.

삼촌이 일본인과 다투다 칼에 맞은 사건을 계기로 검도를 것을 결심하고 12세에 무덕정이라는 도장을 통해 검도에 입문한 이후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검도의 길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처음엔 유도를 배웠으나 단신인 관계로 일본인을 제압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어 더욱 더 검도를 배워야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157, 45의 단신이지만 검도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검도사범이라는 지위 덕분에 징병도 피할 수 있었으며, 야쿠자의 수차에 걸친 입회 제의를 거절하는 등 바른 길만을 걷고자 노력하였다.

선생은 미망인 정봉선 여사와 중매로 22세 때 일본에서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23녀를 두고 있다.

선생님은 일본 사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시가 다쿠미라는 해군 장교라고 하셨다. 그분은 선생님보다 더 키가 작은 분이었지만 찌름에 아주 능하였다고 한다.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그 장교는 어떻게 찌름을 잘 하는지 한동안 죽도를 잡기가 두려웠을 정도였단다.

훗날 선생님은 찌름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상대방이 쓰러질 정도로 찔러야 그게 제대로 된 찌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선생님의 특기인 찌름 기술은 그때 습득한 것으로 사료된다. 바늘로 바위를 완전히 관통하듯이 찔러야 한다는 선생님의 찌름 이론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선생님은 광복이 되자 1948년 귀국하시어 1949년부터 남해군에 정착하였다. 일본에서 배운 사진기술로 생계를 유지하며 야산을 개간하여 평탄작업을 한 후 후학들에게 검도를 가르쳤다. 당시 수련생은 도복 대신 사복을 입었으며, 왕대를 깎아 죽도를 만들었다. 호구는 일제시대 경찰서에서 사용하던 호구를 수리하여 사용하였다.

선생님은 낚시를 유난히 좋아하여 틈틈이 태공이 되어 바다와 사귀었으며, 청빈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 1953년 대한검도회 창단과 함께 4단을 받은 후, 19581215경남경찰국령도 사범으로 임용되었으며, 남해경찰서 상무대에서 58부터 70년대까지 경찰관과 일반인들에게 검도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581220일 대한검도회 남해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62년 제43회 전국체전에 경남대표로 출전한 것을 계기로 총 16 경남대표로 각종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특히 1963년 부산에서 열린 경남 각 경찰서 대항 검도대회, 5회 마산대회, 7회 충무대회, 8 울산대회 등 4회 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어서 1971년 남해중학교 순코치로 임명되었으며, 1972년 제1회 소년체전 경남대표로 남해중학교 검도팀을 출전시키는 등 총 15회 소년체전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1982년 신 군부가 정권을 잡은 제5공화국의 공무원 감원계획에 따라 순회코치를 그만둔 후에는 1989년까지 안빈낙도의 생활을 하였다. 워낙 청빈했던 선생님께서는 수중에 모아놓은 재산이 없어 강아지를 키워 팔면서 자녀들의 도움을 받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오직 검도를 위하여 외길 인생을 걸어오신 선생님을 모시고자 1989 12월 막내아들(승철)이 내려와 폐교(구 남해여중)의 교실을 빌려 도장(남해검도관)을 열자 손수 관원들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당시 칠순이 넘은 노구임에도 직접 호면을 쓰고 관원들을 지도하는 노익장을 하며, 한편으로는 남해중학교에서 검도부를 지도하던 조일래 선생님과 강호훈 선생님을 도와 학생들에게 검도기술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또한 틈틈이 시간을 할애하여 경상대학교 이양 교수님과 평검회 회원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검도발전에 쏟은 사랑과 정열을 높이 인정하는 원로들의 추천으로 199481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검도 범사 칭호를 받았으며, 1996101일 검도 8단으로 승단하셨다.

남해군에서도 이런 선생님의 체육발전 유공을 인정하여 199710 27일 화전문화제 및 군민의 날 행사시 체육부문 군민대상 수상자로 결정하여 군민대상을 수여한 바 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인간의 정해진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셨다.

선생님께서는 1999917일 진주시에 있는 경상대학교 병원에 기관지 천식 등 노환으로 입원한 3개월간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무도로 단련된 몸이라 쉽게 숨을 놓 못하셨다. 결국 그 해 121518시경 남해병원에서 마침내 운명하시자 그동안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였다.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2019-12-04 오전 11:55:00, HIT :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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