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나의 꿈에 날개를 달 수 있을까?
 
 [2013-08-14 오전 9:10:00]

무엇으로 나의 꿈에 날개를 달 수 있을까?

  내 꿈은 작가다. 글쓰기와 독서가 내가 꿈꾸는 삶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하고 ‘자신을 긍정’하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일이다. 그것은 진실로 내게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간직하고 주변 환경에 떠밀려 정작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할 때 글쓰기와 독서를 만났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던 어떤 분노가, 곧 창조성을 위한 신호탄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 과정을 통해 분노가 결코 부정적인 에너지가 아닌 긍정적인 에너지라는 것도 알았다. 분노가 없다는 것은 물결이 일지 않는 바다, 이미 썩은 바다라는 것. 그리고 분노가 일어 흔들려야 마음을 출렁이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분노 없이 갈등을 회피하고 휴식에 들어간 마음은 이미 죽은 마음이라는 것. 에너지가 없는 죽음 마음은 어떤 열정이나 꿈도 꾸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아티스트는 일종의 알 수 없는 일종의 정신적 거래’ 라고 한다. '아티스트는 몽상가'라했다. 저 멀리서 가물거리는 창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 목표는 내 눈에는 보이지만 주변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글쓰기가 곧 그러한 예술이며 독서가 바로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세상을 향한 꿈의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꿈의 깃털이 되어 주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 책을 쓰기 위해 여전히 지금도 펜을 굴리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꿈을 꾸는 만년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일 것이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한 번 혹은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쳤을 수도 있고 이제 막 날개 짓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 그 꿈에 날개를 달기 위해 깃털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싶다.

 그것은 결코 혼자서는 하지 못하는 ‘상처와 두려움’도 함께 겪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매주 내 메일링을 받아주는 사람들까지를 포함하고 있기에 상처와 두려움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태양에 가까이 가고자 하여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내린 신화 속 이카로스가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상처와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모여 나의 꿈의 날개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부리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심정을 가졌다.

 글쓰기와 독서는 나의 내부에 있는 부정적인 힘을 긍정적인 힘으로 돌리고 창조적인 긍정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 내가 ‘알 수 없는 벽에 부닥쳐 상처를 입고 쓰러질 때마다‘ 나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리고 내 안의 또 다른 나, 아티스트 나와 만난다.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이 음악이건 그림이건 글이건 춤이건 두려움 때문에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는 첫발을 떼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꿈꾸기를 권한다. 답은 이미 그대 안에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정진홍 교수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삶의 모든 변화는 깊은 성찰의 소산이요 결과물이다. 과연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의 변화구는 무엇일까? 어느 때부턴가 돌 직구만을 선호하고 그것에 열광하는 이 세태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 삶의 새로운 변화구를 던져야 할 때가 지금이다.'라고 썼다. 앞으로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옆도 있고 뒤도 있다. 내 꿈의 날개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여기에 그 깃털이 널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 자, 날자! 날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