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시대...자연주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2011-05-19 오후 1:40:00]

웰빙시대...자연주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 발행인 김영수
부처님 말씀에 중생은 모두 성불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중생 모두가 불성을 본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일체중생(一切衆生)’이란, 곧 중생심은 다 본래부터 청정한 것. 중생의 본래 마음이 불성의 자리에 있다면 그 불성이 청정치 않을 수 없는 것이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지난달 어느후배는 본인이 소속된 단체의 총회를 개최한다며 참석을 부탁하면서 "언니, 누구누구 등이 참석키로 연락하고 있어예, 언니는 경남의 큰 언니니까 누구든지 모두 포용하는 마음으로 참석해 주셔예"라며 애교스러운 음성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고난 필자는 평소 부처님 말씀을 잘 갈무리하면서 살아야지 그리고 중생(대중)을 위한 공적인 일에는 항상 올바른 역할에서 공정한 입장으로 중립을 지켜주는 것이 여성계의 중심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여겨 또 그렇게 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여 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배의 말을 빌리면 언니는 옳고 그름을 떠나 다소 잘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얼굴빛이 역역히 나타나니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는 표현으로 전달되어와 필자의 마음을 다시한번 다듬어볼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하지만 필자는 또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과일이 똑 같은 맛을 낸다면 그것이 사과인지, 바나나인지, 오랜지인지, 포도인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고, 장미는 장미꽃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 당연할 것이지, 장미꽃이 백합향을 듬뿍 뿜어 낸다면 어찌 될 일인가? 사회는 온통 혼돈의 사회로 변하지 않을까?

좋은 것도 마냥좋고 나쁜일에도 마냥 그럴 수 있다고 긍정적 생각으로 치 닫게 한다면 앞에서는 말하지 않고 뒤에서 무성한 뒷 얘기가 난무한 사회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 평소 필자의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이와 같이 평등하게 성불과 해탈의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지만, 가능성 그대로만 부처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여기에는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문제가 있다. 본래 청정한 그 자리를 청정한 그대로 나타내자면 또, 그 청정성이 뚜렷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 동화되자는 말을 많이 하고 산다. 그리고 요즘은 웰빙시대이지 않은가 말이다. 웰빙은 자연주의 즉 자연과 하나되는 우리로 살아 갈때 그 사람은 청정한 사람이며 자연주의사람이라고 말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흔히 우리의 마음을 거울에 비유한다. 거울은 본래 맑고 깨끗하다. 맑고 깨끗하기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다. 이것이 거울의 본질이다. 우리의 마음도 이 거울 같아서 본래 깨끗하고 맑으며 그리하여 우주의 일체가 여기 그대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장이 두텁고 근기가 얕은 우리 중생은 마음에 낀 때를 벗어버려야 한다. 물론 우리도 그것만 벗고 보면 거울도 때도 없는 경지를 터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많이 노력 할 일이다....